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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1) 말(馬)의 심판 운영자 202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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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심판

(요한계시록 61~8)

20201025() 큰나무교회 주일낮예배

 

계시록 6장은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입니다.

우리는 먼저 마지막 때, 종말의 시점을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보느냐의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부활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신 재림의 약속을 생각한다면 승천하신 그 때부터가 마지막 때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맞습니다. 그렇다면 종말은 이미 오래 전 시작되었고 진행중이며 조금 더 임박해지고 있는 시점으로 간다는 전제속에 말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계시록 5장에서 일곱인으로 봉한 두루마리를 펴거나 뗄 수가 없어 요한이 울었는데 그 두루마리의 봉인을 뗄 수 있는 분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혔습니다.(5:5) 61절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인 중 하나를 떼시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오늘 네 말의 심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흰 말의 심판입니다.

6장은 드디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인을 떼심으로 첫 번째 하나님의 심판이 드러납니다.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2)

흰 말을 탄 자가 누구일까요? 잘못 살피면 주 그리스도로 생각할 여지가 농후합니다. 19장의 백마 탄 자와 혼동되기 때문입니다. 19장의 백마탄 자는 분명 그리스도이지만 본문의 백마 탄 자는 적 그리스도입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이셔서 지금 인을 떼셨는데 거기에 흰 말을 탄 자가 나옵니다. 흰 말을 탄 자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또 계시록은 6장부터 15장까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을 통해서 종말에 어떤 재난이 임할 것인가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첫 번째 인을 떼었다는 것은 첫 번째 임할 재난이 펼쳐질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흰 말을 탄 자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흰 말을 탄 자의 정체는 그리스도를 가장한 적 그리스도입니다. 적 그리스도의 목표와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만들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등장한 이단들을 보십시오. 다 비슷한 옷을 입고, 그리스도를 말하고 십자가를 말하지만 결국은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고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만들고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세가 오면 가장 큰 재난의 원인은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입니다. 적 그리스도의 가장 주요한 활동이 무엇입니까? 그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적대감을 고취하는 것입니다. 안티 기독인들이 많아지는 것 또한 이들의 전략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신앙을 무시하고, 경멸하며 적대시하는 것이 사회문화적인 풍조가 됩니다. 이미 놀라울 정도로 우리 사회는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하고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극렬할 것입니다.

온갖 이단들의 득세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이 주님의 재림이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알 수 있는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

 

둘째 붉은 말의 심판입니다.(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4)

두 번째 인을 떼었더니 이 번에는 붉은 말이 나왔고 그 탄자가 화평을 제하여 버렸으려 서로 죽이도록 만들었습니다.

화평이 사라지고 다툼과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평판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손가락질하며 욕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요인은 교회의 싸움, 분쟁입니다. 성도들끼리 싸우고 교회안에서 지도자들도 다툼하는 일들이 공공연합니다. 세상은 그렇다치더라도 교회만큼은 성도들만큼은 그래서 안되는데 세상과 구별되지 않으니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적 그리스도를 주의하라 하시면서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라고 말씀하시고 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라고 하십니다. 종말 때 일어날 현상들로서 다툼과 분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인류역사에 분쟁이라는 전략을 즐겨 사용하여 왔습니다.

나라간이든, 민족간이든, 노사간이든, 개인간이든 그 이면에는 어둠의 권세를 가진 자들의 장난질이 있습니다. 이 것이 분쟁의 궁극적인 원인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마귀의 분탕질에 속는 것입니다.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다투고, 자존심을 내세우며 생명을 걸고 싸웁니다. 서로를 끌어내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역동성은 주 안에서 하나됨, 즉 화평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가장 추해졌을 때의 모습은 바로 분열이요 분쟁속에 드러납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되는 일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은혜를 입은 자는 이웃과도 하나됩니다. 하나됨, 화평은 복음의 정점에 있는 가치입니다.

 

셋째 검은 말의 심판입니다.(5~6)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헤치지 말라 하더라.”(5~6)

셋째 인을 떼니 검은 말이 나왔고 그 검은 말을 탄 자는 저울을 가졌습니다. 저울은 무게를 재는 도구입니다. 저울은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도구로 공평과 정확을 확증하는데 이보다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6절에서 검은 말 탄 자가 저울질을 합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 또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라고 말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입니다. 또 정상적이라면 당시 한 데나리온으로 밀 여덟되를 살 수 있었고, 모리는 48되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한 데나리온으로 살 수 있는 밀의 가격은 정상가보다 여덟 배가 비싸고 보리는 정상가보다 16배나 비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것은 식품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상태를 말합니다. 곡물이 귀해 벌어진 상황으로 기근이라 말할 수 있고 이 것은 말세에 나타나는 징조입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말씀은 아직 재난이 덜 왔음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당시 감람유와 포도주는 주요식품이었습니다.

다시말해 기근이라는 재난이 시작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근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기근과 너무도 다른 점도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의 변화로 나타나는 기근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기근은 수 많은 어린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또 하나 지구촌에 나타나는 기근은 부의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십여년 전 지구촌 부의 절반은 절대부자 10명에게 쏠려있다고 하더니 얼마 전에는 6명에게 쏠려있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지구촌의 기근문제, 절대부자들이 마음먹고 해결하려 한다면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입니다. 부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도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지구적 종말 현상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주의 논리만 강조되면 부를 쌓는 것만 미덕이 됩니다. 하지만 독점과 독식이라는 사회적 그늘을 드리우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성경적인 경제관을 세우는 것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기독인들이 앞장서 실천해야 하고, 골고루 흩어주고 나누어주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어야 하고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피 흘림의 십자가 정신이 흘러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청황색 말의 심판입니다.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쌍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서 죽이더라.”(8)

예수 그리스도께서 봉인된 넷째 인을 떼니 청황색 말이 나왔고 그 탄자의 이름이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황색으로 번역했지만 헬라어 원문은 푸른색입니다. 그런데 이 것이 단순히 청색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여 청황색이라 했는데 시퍼런색, 맞아 멍든색, 사람이 죽어 변해가는 색깔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고 색으로 표현된 죽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또 음부가 그 뒤를 따른다는 표현도 주목하게 됩니다.

음부는 죽은 사람이 머무는 곳으로 성경에서는 사망과 음부가 병행구처럼 등장합니다. 넷째인의 비밀은 앞의 세가지 인()들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인()의 결말이 사망과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적그리스도, 분쟁, 기근 그리고 사망이 함께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었습니다. 이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기도 하며, 동시에 아직은 구원의 기회가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재난들을 인류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다니엘 기도회에 사랑의 헌금 시간이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나름 안다고 했는데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질병으로 쓰러져 본인은 물론 가정이 무너져 고통당하는 가정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또 다니엘 기도회 간증자들중에 고난당하고 이겨내는 과정속에 몸부림치다가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분들의 간증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재난들을 인류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그 분에게 돌아갈 기회와 여지를 주기 위함입니다.

일곱 인의 재판이라고 하지만 아직 전면적인 심판이 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환난과 시련의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고 기회가 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8)

우리는 이 땅에 일어나는 수 많은 사건과 사고를 통해서 죽고 다치고 고통속에 살아야 하는 장애를 입게 되는 일들을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할래야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해석할려고 해도 해석할 수 없고 함부로 해석해서도 아니됩니다. 다만 슬픔과 고통속에 있는 자를 위로할 수 있다면 저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또 한가지 우리가 마음 깊숙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가 있다면 모든 만물과 시대 그리고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네가지 말의 심판도 이미 주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24:4~8)

말세는 십자가 사건부터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자들이 그토록 간절히 주님의 재림을 기다렸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말세의 마지막 문턱에 있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점점 더 임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시대를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되어지는 일들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 삶의 자세를 바로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더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면서 중요한 것 한가지가 분별력입니다. 이 분별력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그 기초를 쌓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 주시는 지혜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시대, 또 마치 죄를 즐기는 듯 한 이 엄청난 흑암의 시대속에서 진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야 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3~25)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시대를 분별하며 승리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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