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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거인 사무엘 운영자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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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거인 사무엘

(사무엘상 218~26)

20201101() / 큰나무교회 주일낮예배

 

성경에서 사사시대란 기원전 14세기에서 10세기 중반까지 400년 가까운 기간을 말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부터 왕정으로 접어들기 이전까지의 시기입니다. 인물로 표현한다면 여호수아 이후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등장하기 전까지를 말합니다. 사무엘은 사사 삼손 이후 블레셋의 통치하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민족의 영적 지도자로 활동했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삼손을 12번째 마지막 사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학자들에 따라 사무엘을 마지막 사사로 보기도 합니다. 그는 블레셋의 통치하에 억압받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자가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바랐던 왕정을 세우는 일에 기초를 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사울을 기름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했고, 하나님을 떠난 사울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다윗을 기름부은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영적 암흑기였던 시대에 빛을 밝히는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시작을 알리는 개척자이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였던 위대한 지도자요 영적거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가문의 자녀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제사장 가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엘가나와 한나의 아들 사무엘입니다. 두 가문은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의 아버지는 엘리 제사장으로 명문 가문이라고 할 수 있고, 사무엘의 아버지는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다임소빔에 사는 무명의 엘가나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표현으로 홉니와 비느하스는 금수저요 사무엘은 흙수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 찬스로 누리는 혜택속에서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고 사무엘은 젖떼기가 무섭게 성전에 맡겨져 부모님께로부터 떨어져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적인 것을 본다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로 자라야 정상이지만 성경이 전하는 홉니와 비느하스는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고 안하무인의 부랑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부모의 훈계도 듣지 않으며 자기 멋대로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시정잡배에 불과하였습니다. 젊은 날의 치기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두 아들은 끝내 이러한 삶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전장터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그들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당대의 제사장 엘리가 그들의 아버지로서 온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지도자였고,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고 부족함없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들은 그들의 마음 먹기에 달려있었습니다. 명문가문, 존경과 권위를 지녔던 제사장 아버지,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부요함이 있었습니다. 추측해보건데 주변에 훌륭한 선생들이 있었을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환경이 그들을 훌륭한 인물로 키워내는데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무엘의 모습은 대조적입니다. 어찌보면 사무엘처럼 안타깝고 불쌍한 인생도 없습니다. 신앙적인 측면을 떠나 세상 기준으로 본다면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지만 버려진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젖떼기가 무섭게 성전에 바쳐집니다. 가치관이 형성되기 이전, 부모의 사랑을 한 껏 받고 자라야 할 어린아이가 홀로 성전에서 자라나야 했습니다. 성전에서 홀로 자라는 외로움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성전의 잡일을 도맡아 하며 그는 종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비뚤어져 나가야 할 것 같고,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사납고 거칠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전에서 사람들과 떨어져살다보니 총명함을 잃어버리고 허드렛일이나 하며 사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보일 것 같은 사무엘은 위대한 믿음의 인물로 믿음의 나라, 이스라엘의 초석을 놓는 영적 리더로 세워졌습니다.

 

특별히 22절에서 25절에 나타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아들임에도 하나님께 대한 경외의 믿음이 조금도 없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범죄는 끔찍하고도 완악했고 멈출 줄 몰랐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그들의 구체적인 범죄 장면은 상상하기 힘든 일들입니다. 여호와께 제사하는 그 날에 그들은 제사가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 앞에 드려진 제물을 취하여 먹고 마셨습니다. 또 그들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범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간곡한 권면에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25)

사무엘에 대한 성경의 기사는 어렸을 때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다는 것으로 기록됩니다. 21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는 말로 사무엘의 삶이 철저한 성전의 삶이었음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26절은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고 적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위대한 영적리더로 설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봅니다.

1. 신앙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기도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아이가 없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자녀가 사무엘이었고 그녀는 그가 하나님 앞에 서원했던 것처럼 사무엘을 젖떼기가 무섭게 하나님의 제단에 드렸습니다. 어린 자녀를 성전에서 자라도록 떼어놓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노라고 서원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엘리 제사장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그녀는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어머니였고 매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를 위해 성전에 올라올 때마다 사무엘의 옷을 지어다가 사랑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가정, 이름도 없는 무명의 가문,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는 후일 스스로 공부하며 자수성가한 인물로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고 노예해방을 이룹니다.

링컨의 삶의 환경으로 본다면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버지는 조금 괴팍하기도 하고 훌륭한 인물이라고 할 수 없는데 그에게는 위대한 어머니들이 있었습니다. 그를 낳아준 생모와 그를 길러준 또 다른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비록 생모는 링컨의 어린 시절 병들어 죽지만 링컨을 지극히 사랑했고 그 가난한 환경에서도 링컨이 잠들기 전 성경을 읽어주며 그의 꿈을 자극했습니다. 그를 길러준 어머니도 또한 링컨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또한 링컨에게 성경을 읽어주며 그를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아 주고 꿈을 키우도록 끊임없이 자극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사무엘의 한나는 참 냉정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젖먹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성전에 맡길 때의 한나의 마음을 우리는 쉽게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맡기면서도 그의 마음은 무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서원을 하고 얻은 아들이기에 한나는 생명의 주관자요 모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철저히 서원을 이행하는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들이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녀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어머니의 자리가 절대적입니다. 어머니들이여 자녀들을 위한 신앙의 자리를 포기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한나를 통해 보는 어머니의 자리는 하나님 앞에 맡기고 눈물로 기도하는 믿음의 자리였음을 마음에 새기기를 바랍니다.

2. 거룩한 성전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에게 성전은 자신의 집이었고 놀이터였으며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외롭고 힘겨운 성전생활이었지만 그는 성전중심으로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옷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18)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1)

호위호식하며 지낸 것이 아닙니다. 굳은 일로 섬기며 성전의 심부름꾼으로 어린 시절을 다 보냈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외롭고 고독할 수 있는 그 길을 걸으며 자라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이 허비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며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가며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맞출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일주일은 7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 낮 예배를 드림으로 성전의 삶을 끝냅니다. 이 것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삶의 초점을 맞출 수 있을까 싶습니다. 안타까울 정도로 현대인들은 바쁘고 피곤한 삶에 지쳐있습니다. 몸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성전중심으로 살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있어야 몸이 가고, 몸이 가는데 생각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억지로라도 우리의 바쁜 삶을 내려놓고 성전중심, 믿음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위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묶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 것이 신앙훈련이요, 기도의 자리에 나오는 것이요, 자신을 채찍질하여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성전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도중심으로 살며 말씀중심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는 새벽기도를 촉구합니다. 습관적으로라도 하나님 앞에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은 치열한 영적전쟁을 치루며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산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속회를 쉬고 있지만 권사님들은 최소한 속회를 통한 교제와 말씀나누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냐 내가 살고 공동체가 살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 새벽예배까지 예배를 향한 사모함과 열정이 최소한 권사님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성전이 항상 여러분 곁에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범이 될 수 없다면 중직의 자리는 멍에일 뿐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전에서 자라나고, 여호와 앞에서 살았던 사무엘에게 대한 기록을 26절은 이렇게 밝힙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6)

아이들로 하여금 성전에서 살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결코 손해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의 출발점이 성전입니다. 성전중심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 것은 모든 일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3. 제사장 엘리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에게는 그의 스승이었던 엘리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엘리 제사장의 가문은 자녀 교육의 실패로 가문이 몰락합니다. 이 것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에게 엘리 제사장은 영적스승이요 아비였고 사무엘은 그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3장으로 가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전히 어렸던 사무엘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웠습니다. 어린 사무엘의 잠자리가 성전이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지만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엘리 제사장이 부른다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엘리 제사장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찾아갑니다. 세 번째에야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무엘을 부르는 것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삼상9:3) 고 일러줍니다.

비록 나이가 많고 늙었으며 영적감각, 영적분별력이 떨어진 엘리 제사장이었지만 사무엘에게는 영적스승이요 영적아비가 되어준 것입니다.

또 다른 영적 멘토를 연결해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셔야 합니다.

자리를 만들어 신앙의 귀감이 되는 이를 연결시켜고 신앙서적을 통해 경험하게도 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내 가족이 아닌 또 다른 사람들과의 자극을 통해서, 만남을 통해서 놀랍게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의 문제는 결코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흙수저, 금수저 논쟁은 불신앙적인 이야기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를 통해, 우리 자녀를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고 사용하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위대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꿈을 꾸고 도전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믿음의 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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