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교회, 이런 성도 | 운영자 | 2020-1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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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회 이런 성도 (데살로니가 전서 1장 1절~10절) 2020년 10월 25일(주) 큰나무교회 주일낮예배
예루살렘에 불어닥친 핍박을 피해 흩어져야 했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세워졌던 안디옥교회, 바울의 2차 전도여행중에 바울의 전도에 의해 세워진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 계시록에 나타난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중 서머나교회, 빌라델비아교회는 초대교회의 여러 교회중에서도 믿음의 좋은 본보기가 되는 교회들입니다. 그중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어떠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데 급격한 변화속에서 신앙의 여러 가지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대 건강한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도전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네압볼리항을 거쳐 유럽의 첫 관문이었던 빌립보에 도착하여 전도합니다. 바울 일행은 강가에 모여있던 루디아 일행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고 자주장사였던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루디아를 주축으로 시작되어 바울의 선교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에서의 전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속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갑니다. 데살로니가는 오늘날 그리스의 제 2도시 데살로니끼로 인구 104만의 항구도시입니다.(인구104만) 금년 1월에 있었던 바울전도지 성지순례중에 우리는 데살로니가 항구에서 배를 타고 1시간정도 데살로니가 바다위에서 데살로니가 도시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잔잔했던지 바다가 아니라 호수위를 떠 있는 듯한 느낌이어서 이색적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 약3주 정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적지 않은 무리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행17:4) 그런데 문제는 데살로니가에 있었던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핍박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복음을 받아들인 야손과 몇 몇 형제들이 곤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에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이 한 밤중 급하게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냄으로 데살로니가 전도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3주정도의 짧은 기간, 유대인들의 방해와 핍박속에서도 바울의 전도는 헛되지 않아 데살로니가 교회가 태동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쓴 바울의 편지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서를 쓴 이유는 헬라의 이교적인 배경을 가진 터전이지만 신앙안에서 흔들리지 말고 견고히 설 것을 권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에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경적인 어려움속에서도 얼마나 안정적이고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했는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기억속에 감사할 수 있는 교회요 바울의 기억속에 뚜렷히 기록된 교회였습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들 짧은 기간동안 전도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의 순수함과 열정은 바울의 뇌리속에 강력하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6절에서 “또 너희는 많은 환난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라고 말하고 7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고 쓰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도했던 지금의 그리스 전역에 세워졌던 여러교회에 건강한 교회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을지, 보람이 되었을지, 바울 자신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전도의 동기가 되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본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떠한 교회였는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3절 말씀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3)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나타난 신앙의 모습은 세가지로 말합니다. 1.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역사라는 것은 History가 아니라 Work를 말합니다. ‘믿음의 활동, 믿음의 행위, 믿음으로 행한 일’ 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바울은 처음부터 복음의 전도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열렬한 유대교 신자로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독버섯 같은 암적 존재로 보았고 이를 차단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확고한 유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가 알고 있었던 예수는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단의 괴수’에 불과했습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붙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일어난 일은 그의 인생 전체를 180도 바꾸어 놓았습니다.(행9) 다메섹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며 바울에게 나타난 예수는 바울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주십니다. 열혈 유대교인이었던 ‘주를 위해 죽고 주를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이 후 바울은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는데 1,2,3차 전도여행을 통해 나타난 바울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은 피가 마르고, 애가 타는 감당하기 힘든 기가막힌 고난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는 강의 위험, 바다의 위험속에서도 전도여행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맞고 굶주리고 헐벗어야 하는 일이 계속되고 지칠 수밖에 없었음에도 끝까지 감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왠만한 사람이라면 중도포기하거나 도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바울이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1차 전도여행중 포기하고 돌아간 마가가 이해가 된다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바울의 전도여행은 ‘극한 직업(?)’ ‘극한 사역’이었습니다. 바울은 한 번도 ‘할 만큼 했다.’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그는 말할 수 없는 고난속에 이루어진 복음의 열매들을 자기의 수고로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주어진 사명(Work)이었습니다. 바울이 감당한 ‘믿음으로 하는 일’이요 ‘믿음으로 하는 모든 수고’는 결국 ‘믿음의 역사(History)’를 만들어냈습니다. 바울의 수고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나타났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바울이 바뀌니까 가치관이 바뀌고, 인생의 자세가 달라졌고, 일이 아닌 사명을 짐을 지고 일평생 달려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믿음으로 감당한 일(Work)이 믿음의 역사(History)를 쓰는 일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무익한 사람을 유익한 사람으로 바꿉니다. 자기 살기에 바빴던 이기주의적인 사람을 공동체에 변화와 유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을 바꿉니다. 이 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곧 믿음으로 무장한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히스토리 메이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환난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6절) 또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9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말씀대로 살았고, 과감히 그들이 오랫동안 섬겼던 우상을 버렸으며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일평생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의 전도와 선교를 기도로 뒷받침했으며 바울의 좋은 동역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2.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가장 큰 변화는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가 너무 커 은혜에 화답하여 살아가는 삶은 곧 사랑의 수고로 나타납니다. 수고란 즉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섬기며 봉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댓가를 받고 일하는 것을 수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비량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를 위해 기꺼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수고는 구원의 문제와 0.001%도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구원의 조건을 위해 수고하지 않습니다. 수고한다해도 구원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수고란 구원받은 자로서의 마땅한 삶을 말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했네’라는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수고의 자세가 아닙니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있었습니다. 1만 2천 5백리터가 유출되었는데 그 양이 엄청났습니다. 학자들은 수 십년이 지나야 환경이 복원될 것이라고 진단할 정도로 참혹한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국에서 130만의 자원봉사 인파가 몰려왔고 수개월에 걸쳐 기름을 걷어내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2년후 기름유출 이전의 상태로 복원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대다수가(70~80%)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기에 달려간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고통당해야 했던 일제시절 1%도 안되는 그리스도인들이 독립운동에 끼친 역사는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수고를 수고라 하지 않고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태도가 참된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섬기고 대접하며 높여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그리스도인의 일상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친구를, 상사를, 어른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도 크다는 것에 감격하는 사람은 사랑의 수고를 수고로 여기지 않고 상급으로 여길 뿐입니다.
3.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는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재림신앙이 선명했다는 점입니다. ‘천국 소망없이 신앙생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다만 착하게 살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믿는다면 굳이 여기에 와 앉아있을 필요없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성현들의 주옥같은 명언들과 그들의 삶을 배울 수 있는 책들도 많고 가르치는 이들도 많습니다. 연세가 있으신 어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천국 소망이 선명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때가 되면 육체가 쇠하여지고 어느 날 한 순간에 꺽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바라보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전에는 우리의 소망이 조금 더 잘사는 것이 소망의 전부였고, 조금 더 높은 자리, 존경받는 자리를 얻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의 소망을 바꾸었는데 그 것이 천국소망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확신과 천국소망을 흔들려는 마귀의 역사는 더 강렬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천국소망의 확신도 감당할만한 시련속에서는 오히려 단단해지지만 극심한 환난과 시련이 오래되면 꺽이기 쉽습니다. 반대로 평온한 삶과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이 천국소망을 흐려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모든 때에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기다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심지를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칭찬은 우리가 바라보아야할 믿음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소망의 인내가 있었다는 것을 칭찬합니다. 인도의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는 그래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지만 교회는 나가지 않겠다.’는 참으로 안타까운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유학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로 가득한 영국사회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요? 반대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살기를 늘 소망했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외과의사였지만 치료비를 낼 수 없는 환자들의 치료비를 자신의 월급으로 대신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장기려 박사의 월급은 항상 적자였고, 병원 운영도 어려워지게 되자 무료환자에 대한 결정은 병원의 부장 회의를 거쳐 결정하기로 결정합니다. 모든 결정권을 박탈당한 이후부터 장기려 박사는 어려운 환자들이 생기면 야밤에 탈출하라고 병원 뒷문을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1.4 후퇴 때 환자를 돌보는 와중에 부모 부인 5남매를 평양에 남겨두고 둘째 아들만 데리고 피난길에 올라 이산가족이 된 장박사는 평생 재혼하지 않고 고향의 가족을 다시 만날 날만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85년 정부의 방북 권유를 거절하였는데 혼자만 특혜를 누릴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장박사는 끝내 그리운 가족과 상봉하지 못한 채 95년 성탄절 새벽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예수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소아시아 그리고 이스라엘 본토까지도 알려졌습니다.(8) 교회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거룩하고 복된 믿음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여정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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