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통로로 쓰임받으라. | 김승규 | 2014-0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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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로 쓰임받으라. ‘주일예배를 목숨처럼 생각하라’ 그리 외쳐도 소용이 없다. 미리 찾아가 축의금을 건네고 기도라도 한 번 해주고 오면 잊을 수 없는 축하와 격려가 될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람은 관계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사회학자 마틴 부버는 나와 너의 만남을 외쳤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이웃과 이웃,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까지 연결된다. 관계를 중시하고 타인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름답다. 관계는 서로 주고 받으며, 오고 가는 방문과 마음에 있음은 틀림없다. 어느 한편이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혈연이 아닌 이상 그리 오래갈 수 없는데 이 것이 가능한 것이 신앙인의 관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이 그러했고 믿음의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배우는 일이 섬김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식 결혼시키려면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고 하고, 자식 혼사에 달려와 준 이들을 생각하면 열심히 찾아가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일이고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품앗이 개념이 바탕이 된 경우가 의외로 많다. 심지어는 축의금 기록 장부를 보관해놓고는 아무개가 3만원 했으니 자신도 3만원하면 되고 누구는 10만원 했는데 부담이 되도 10만원해야 한다는 식이다. 결혼식장을 찾는 것, 최소한 품앗이 개념은 뛰어넘으라. 신앙인들 중에 축의금도 화환도 받지 않는 결혼식을 하는 이들이 꽤 있다. 꼭 경제적으로 넉넉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결혼식에도 열심히 찾아가 축하해주고 가정을 이루는 이들을 축복하라. 그러나 주고 받는 관계를 이루어가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주신 복을 흘려보내는 일로 그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브라함은 시날 왕 아므라벨 연합군에 포로가 되고 모든 재산을 빼앗긴 조카 롯을 위해 마므레의 동맹군들과 자신의 사병들을 이끌고 올라가 4부족 연합군을 쳐서 파하고 조카 롯을 구했으며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된다. 아브라함은 살렘 왕 멜기세덱, 즉 하나님의 제사장이 영접하러 나왔을 때 그에게 1/10을 드리고 자신을 도운 마므레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을 제외하고는 전쟁에 패했던 소돔성을 비롯한 5부족 연합군에게 되돌려준다. 아브라함이 보여준 섬김과 희생이요 마땅히 자신의 것 이라 해도 될 것들을 되돌려주므로 복의 통로가 되었다. 이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이다.
우리 부부는 이제껏 5가정을 중매했다. 중매를 잘하면 양복 한 벌, 한 복 한 벌씩 얻어 입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오히려 ‘잘 살아주었으니 짜장면이라도 사야되지 않겠느냐?’는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이 오히려 추억이요, 잘 사는 모습이 감사일 뿐이다. 우리 부부 역시 이리교회 목사님의 중매로 결혼을 했다. 양복 한 벌은 엄두도 못 냈고 작은 성의를 보여드렸는데 그 것마저 목사님은 이상근 박사의 신약 주석 한 질을 선물로 주셨다. 어디 그것뿐인가? 결혼 후 수 년동안 자녀가 없자 ‘한약이라도 지어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송금해주시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연결시키는 중매나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신뢰가 가는 사람을 연결시키되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매하는 일, 누군가를 추천하는 일이라면 최소한 이런 각오쯤은 있어야 한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이로인한 어려움 중에 있을 때 한약 한 재는 사줄 각오, 내가 추천한 사람으로 인해 무거운 짐을 한 번 쯤은 져줄 각오로 하라. 이 것이 복의 통로로 쓰임받는 신앙인의 진중한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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