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 김승규 | 2013-11-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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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바울은 이 일을 책망하며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1:13) 사람이 악할 때에는 놀랄 정도로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서로의 갈등 그로인한 분쟁이 있을 수 있으나 갈등이 고조되면 그 어떤 면도 상대편의 의견은 수용하지 않으려 할 뿐더러 어찌하든지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된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힘을 모으려 하기 때문이다. 혈연을 이용하여 사둔에 팔촌까지 끌어들이는가 하면 지연을 이용하여 경상도, 전라도 하며 따져 구분하고 학연으로 세를 규합하기도 한다. 인간의 적나라한 죄성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는데, 지역, 혈연, 학연등에 따라 서로 먼저 도우려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로 보아야 맞다. 그러나 이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제 식구 감싸기 식의 모습으로 변질이 되면 이 것처럼 추한 것이 없게 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나 또 서로의 추구하는 목적을 따라 모인 공동체는 치열한 경쟁과 보이지 않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는 이와 달라야 한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며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고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눈물과 기도, 헌신을 통해 세워진 고린도 교회에 다툼과 분쟁이 있다는 소식은 바울에게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가 완전하지 못하고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다툼과 분열의 중병을 앓고 있다. 주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혹 우리도 중심을 잃고 믿음의 본질을 놓치며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가 있을 수 있다. 의견이 나뉘고 갈등이 증폭될 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인지? 이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것인지? 그렇게 다투고 싸워 쟁취해야 할 믿음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만 한다. 이 것은 신앙의 본질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바울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려고 고린도에 갔던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1:17) 오직 예수 그리스도, 즉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었으며 그는 주님의 십자가가 제대로 증거되는 이 일을 위해 말과 행동, 삶에 신중을 기하였다. 교회와 성도의 사명은 오직 복음증거에 있음을 기억하자. 이 일을 위해 우리는 같은 말을 해야 한다.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고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한다. (고전1:10) 하나되지 못하면 오합지졸이 되고 어떤 일도 이루어내지 못하지만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하나되어 하나님을 의뢰하면 하나님의 역사속에 기적의 주인공으로 쓰임 받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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