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의 해바라기 | 김승규 | 2013-1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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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해바라기
(13.10.06) 7~8년 전인가, 더위가 끝나고 가을 초입에 들어서던 때, 나는 교회의 넓은 공지에 코스모스 씨를 뿌린 적이 있다. 시골의 길가로 활짝 핀 코스모스가 지나는 차들을 반기고 보는 이들의 마음에 무지개 빛 가을의 추억을 만드는 때에 꽃씨를 뿌렸으니 재정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때에 꽃씨를 뿌릴 것인가? 씨앗을 뿌려놓고서도 괜한 짓을 했구나 싶어 더 많은 관심이 갔던 것이 사실이다. 싹이 나고 자라는 것으로 만족해야 될 것이라 생각하며 사실 꽃을 보려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쌀쌀한 날씨, 겨울을 재촉하며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기온속에 모든 식물들이 스러져갈 때에 가냘픈 모습으로 올라온 코스모스 한 대공마다 꽃 몽우리가 맺히는 것이 아닌가? 작은 것은 10cm정도 키가 큰 것은 기껏 20cm정도씩 자라 꽃 몽우리가 꼭 하나씩 맺힌 것이다. 얼마나 놀랍고 신기하던지 매일 매일 꽃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생겼다. 제철에 심었던 코스모스들이야 50cm이상 또는 1m이상씩도 자라고 무수한 곁가지들과 거기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코스모스를 피우며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야 장관이 아닐 수 없지만 가을초입에 심어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코스모스이기에 신비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기껏 한 대공에 꽃 한송이씩을 피웠지만 코스모스가 아닌 또 다른 종의 꽃을 보는듯한 묘한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뿌려진 코스모스의 씨앗들은 심어진 때와 빠르게 다가오는 겨울의 기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온 몸으로 기온과 바람, 그리고 뜨거운 여름과는 확연히 다른 가을의 햇볕을 느끼며 최대한 빨리 꽃을 피우고 사라져야 함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해 점점 더 쌀쌀해지는 기온을 이기며 작은 들꽃 군락처럼 피어난 코스모스의 생명력과 아름다움, 코스모스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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