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뛰어넘는 믿음 | 김승규 | 2013-08-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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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뛰어넘는 믿음
(2013.08.18) 친한 친구의 아버지는 지독한 술꾼이셨다. 술독에 빠져 살다시피 한 그 분은, 친구는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남겼고 결국 간경화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친구는 술하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고 술 먹는 사람조차도 싫어할 정도였다. 술꾼 아버지 밑에 자식도 십중팔구 술꾼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친구는 예외적인 경우일 수도 있다. 대부분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술꾼으로 살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연약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자라온 삶의 환경이 그만큼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경을 탓하고 부모를 탓하며 친구를 탓한다. ‘내 삶은 누구 때문에 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현대사회가 핵 가족화되고 더 나아가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녀들에게로 돌아간다. 원치도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환경들이 어린 자녀들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의 쓴 뿌리가 되어 마음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상처의 쓴 뿌리들은 모가 난 돌이 되어 또 다른 이들에게 향하는 비수가 되어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점점 나약해지는 것일까? 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은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초라한 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 것은 한 가지만 알고 또 다른 한 가지는 모르는 것이다. 환경에 지배당하며 사는 연약한 인생이지만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위대한 존재로 지어진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결국 믿음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믿음은 환경을 뛰어넘게 하는 능력이다.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 분께 인생을 맡기는 순간부터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척박하고 힘겨운 환경일수록 그 것은 그 자신을 단련시키고 성숙하게 하며 더 넓은 세계, 더 많은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뿐이다. 이 것은 잘 정비되고 그동안 닦아놓은 삶의 환경을 버리는 일이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잃은 조카 롯을 데리고 가야 했다. 아브라함은 좋은 환경을 버려야 했으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땅으로 믿음가지고 나아갔더니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고 믿음의 조상이 보여주는 위대한 인생 여정을 걷게 된다. 반면 조카 롯을 보라. 그는 아브라함과는 달리 믿음의 여정을 포기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 삶을 선택하며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달려간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요, 완전한 패배며 부끄러운 인생으로 끝맺는다. 환경을 탓한다면 아브라함이 먼저 해야한다. 아버지를 먼저 잃은 조카 롯이지만 그는 환경을 탓하기에는 너무도 든든한 삼촌 아브라함이 있었다. 목숨을 구해 준 것이 몇 번이었던가? 아브라함의 양보로 그는 물과 초지가 넉넉한 요단 동편으로 이주해 갈 수 있었다. 좋은 환경을 버리고 믿음의 길을 걸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좋은 환경을 따라 살았던 조카 롯은 부끄러운 인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환경을 탓하지 말라! 가난을 탓하고, 부모를 탓하고, 친구를 탓하지 말라. 자신의 인생이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만큼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믿음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라. 환경이 척박하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시키는 학교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당신은 환경을 뛰어넘어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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