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빛된 삶 | 김승규 | 2013-04-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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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빛된 삶
(13.04.07) 건축은 시대의 정신, 삶의 철학, 문화를 표현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실용을 담아낸다. 이런면에서 본다면 건축은 하나의 예술인 동시에 삶의 만족을 이끌어내는 인프라로 말할 수 있다. 예술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의 아파트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사각면체로 쌓아올린 탑이 아파트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데 건축으로서의 아파트는 개개인의 다양한 성향과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능과 실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뛰어난 건축물이다. 대지의 효율성과 탁월한 경제성은 단독 건물이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요. 관리상의 편의성, 난방의 효율성, 공간 공간의 독립성은 아파트만의 장점이다. 층간소음문제가 치명적인 약점이지만 주거 형태로서의 아파트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건축의 예술적인 측면이 강조될 때 다른 무엇보다 건축가는 빛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데 카톨릭 교회들은 이런면에서 탁월한 건축물이다. 교회로서의 공간이 가져다주는 거룩성, 신비감, 황홀함은 빛의 활용도에 달려있다. 이 부분은 전적인 건축설계자의 능력이다. 공 예배뿐 아니라 개인이 홀로 예배당에 섰을 때 공간에서 느껴지는 거룩함, 신비감, 황홀감은 카톨릭 교회들이 잘 담아냈는데 다른 어떤 부분보다 빛을 잘 담아낸 건물이라는데 이견을 달 수 없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예배중심, 설교 중심이다보니 이런 종교적이고도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보다는 공간의 집중도, 활용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큰나무교회의 건축 또한 기능과 실용적인 면에 중점을 두었는데 대예배실의 집중도, 소음의 완전차단을 통한 이웃의 배려, 적절한 공간 안배와 기능적인 면을 우선 고려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교회 건축은 모던하고 빛의 활용은 실용적이다. 경제력이 밑받침되면서 건축은 점점 더 아름답고 위대한 시대정신과 가치를 표현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보인다. 그러나 각 지자체들이 최근에 지은 공공건물들은 잘 지은 듯 보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문제가 무엇인가? 각 지자체별로 자기과시, 업적위주의 건축이 되다보니 그 시대의 가치, 문화, 정신을 담는데 실패하고, 기능과 실용적인 측면은 현저히 떨어진다는데 있다. 뿐만 아니라 혈세로 지어진 건물들이 건축 준공 후에도 국민들의 혈세를 집어삼키고 있다는데 있다. 도청, 시청, 공항, 이용자들을 부풀려 지은 다리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적은 교회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90년대 이후 교회마다 건축의 바람이 불었고 교회건축은 대형화, 그리고 자기과시적인 측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교회를 건축하면서 “혹 목회자인 나의 욕심이 아닐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건축이 될 수 있는가? 성도들의 기쁨이 되고 신앙성숙과 참된 헌신의 시간이 될 수 있는가?” 에 대하여 깊이 고민한 것이 사실이지만 새로운 소망과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는 성도들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이제 바램이 있다면 성도들의 헌신위에 세워진 이 건물이 시대와 모든 이들의 자랑이 되고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건물이 되었으면 하는 신앙적인 욕심이 있다. 외형적인 건물이 크고 아름답다하여 그 시대와 그 도시의 렌드 마크가 되지는 않는다. 건축가는 건물 자체를 통하여 말하려 하지만 교회는 부르심 받은 성도들의 삶을 통해 말하는 것이고, 교회건물은 성도들의 소리를 담아내는 울림통이라 할 수 있겠다. 하나님의 은총의 빛을 되받아 세상을 비추어야 하는 우리의 빛된 삶을 살펴보자. 이 것이야말로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건물마저도 경외감, 신비감을 갖게 하는 능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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