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를 타라 ! | 김승규 | 2013-03-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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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타라 !
(2013.03.24) 시골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황소를 타고 논과 밭으로 가는 농부의 모습을 본 기억들이 있지만 되돌아보면 아주 낯설고 어색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황소를 탄 농부 모습보다 더 기이하기만 한데 굳이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까닭은 당신의 입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나귀를 타신 그 모습으로 더 강력한 메시지를 들려주시려 함이다. 1. 섬김이다. 소금을 싣고 가던 나귀가 물에 넘어져 짐이 가벼워진 것을 경험하게 되자 그 다음번엔 일부러 물 한가운데서 넘어지지만 생각과는 달리 물에 잔뜩 젖은 솜의 무게로 인해 고생을 해야 했던 어리석은 나귀이야기는 이솝우화에 등장한다. 고단한 삶을 통해 인간사회에 공헌을 하였던 나귀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귀는 인간에게 없어서 안될 중요한 가축이었고 인간이 힘써야 할 일을 허리가 휘도록 감당하며 인간을 섬기다가 죽음을 맞는 가축이다. 그래서 나귀는 섬김의 대명사가 되었다. 주님은 낮아지고 섬기러 오셨고,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하나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신다.(마20:28) 섬김없는 사회는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지옥이라면 섬김을 통해서 만들어 가는 가정, 교회, 모든 공동체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천국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것은 바꿀 수 없는 천국이다. 2. 평화의 왕이시다. 칼로 흥했던 자들은 하나같이 칼로 망했고 역사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는 사라졌다. 그들이 탔던 것은 나귀가 아니라 갈기를 휘날리며 전쟁터를 달리던 군마였다. 주님은 유대 열혈독립주의자들의 기대를 저 버리셨다. 그들이 생각했던 힘으로 로마를 제압한 것이 아니라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이 땅의 평화를 가져오신다. 세상 칼날에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셨지만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요 로마는 물론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되게 하신다. 참된 평화, 참된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나귀는 일상의 평화를 상징한다. 나귀의 일생이 무엇인가?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논, 밭으로 향하고, 가을 들녘 농부들이 거둔 열매를 나른다.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시무시한 칼이 아니다. 무자비한 권력이 아니다. 큰 소리친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불어대는 사나운 바람에 나그네의 옷이 벗겨진 것이 아니라 따사로운 햇살에 나그네는 옷을 벗었다. 참된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샬롬(평강)에 있다. 3. 삶의 여유다. 서두른다는 것은 나름 부지런을 내포하지만 서두르므로 인해 더 큰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곱씹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눈 앞에 둔 주님이야말로 다급한 마음이요 성질 급한 사람은 뛰는 것이 낫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나귀를 타셨다. 천천히 들어가는 중에 호흡을 조절하시고 사명의 완수를 위한 일들을 점검하지는 않으셨을까? 나귀를 타신 주님은 무엇 때문에 바쁜 것인지, 누구를 위하여 바쁜 것인지를 묻고 계신다. 목적도 없이 달려가는 인생은 어리석다. 자신을 알고, 자신의 사명을 따라 달리는 자가 신앙인이다.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신중함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한 묵상과 기도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귀를 타자. 누가 뭐라해도 신경쓰지 말일이다. 쫒아오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웃음짓고, 아이들의 노랫소리에도 화답하라. 보폭을 맞추고 그래도 걷기 힘든 사람은 나귀에 태워주며 걸으라. 이 것이 동행이요 목회며 행복이라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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