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싶은 나무 ? | 김승규 | 2012-11-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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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싶은 나무?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요 사랑했던 아내 라헬을 통해서는 첫 번째 얻은 아들이다. 아들들 중에 더 마음 가는 아들이 있을 수야 있겠지만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지어 입히며 다른 형제들보다 유별나게 사랑을 준 것은 집착에 가깝다 할만하다. ‘될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옛말이 있다. 요셉이 꿈을 꾸고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꿈 이야기를 한다.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을 찾아 도단으로 왔을 때 형들은 요셉을 붙잡아 미련없이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고는 들짐승에게 찢긴 것처럼 아버지에게 거짓 보고한다. 요셉을 미련없이 팔아넘길 만큼 쌓이고 쌓인 요셉을 향한 형들의 마음은 찢기고 상해있었다. 요셉은 이스마엘 사람들에 의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고 보디발의 종으로 팔린다. 그는 애굽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인정받아 가정총무로 일하게 된다. 히브리의 종이 난다긴다하는 시위대장 보디발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자가 된 것이다. 또 그는 끊임없이 구애하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자가 된다. 단순히 젊다는 것 그리고 육체적인 매력 때문에 보디발의 아내가 그에게 매달렸을까? 아니다. 감옥에 갇힌 중에도 간수장의 신임을 받는 요셉을 살펴보면 그는 인품은 물론 자기관리가 탁월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심지가 굳은 올 곧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종의 신분임에도 이 것이 그를 함부로 할 수 없는 그의 능력이요 묘한 매력이었다. 17살의 철부지 싹이 노란 요셉과 20대 중 후반의 삶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요셉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동명이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나안의 요셉과 애굽의 요셉이 대비된다. 홀로 애굽이라는 낯설고 거친 바다에 내쳐진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다. 신앙은 그를 세웠다. 하나님은 그를 혹독히 훈련시키셨고 새로운 그릇으로 빚으셨다. 그는 애굽왕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요셉은 일곱해 흉년이 들기 전 아스낫과 결혼하여 큰 아들을 낳아 므낫세라 하였는데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창41:51)는 뜻이다. 일곱 해 흉년이 시작되어 2년째 되던 해에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온다. 애굽으로 와야 살 수 있기에 양식을 얻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요셉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때의 충격과 혼돈의 기억들, 그날의 사건들이 비로서 해석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빚으시며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눈에 싹이 노란 인생, 그래서 과감히 버려야 할 인생, 그런 인생은 없다. 미련하고 약하며, 천하다 취급받고 멸시받는 인생들을 부르셔서 지혜롭다하고 강하다하며 존귀하다 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고전1장) 교회는 이 놀라운 하나님 역사의 중심속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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