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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 故 하용조 목사 | 김승규 | 2011-08-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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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한 헌신, 故 하용조 목사
복음주의의 4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옥한흠 목사는 제자훈련을 통해 평신도를 깨우는 일에 진력했고, 이동원 목사는 강해설교와 소그룹 목회를 지향했으며 홍정길 목사는 밀알복지재단을 통한 장애인사역을, 하용조 목사는 복음에 밑바탕을 둔 문화사역과 선교사역을 통해 사역자들을 깨웠다. 건국대학교와 장신대를 졸업한 하용조 목사는 76년 연예인교회를 시작으로 불꽃같은 목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생 시절 폐결핵을 앓았던 것을 시작으로 연예인교회 사역중 간경화 판정을 받아 사역을 내려놓아야 했으며 이 후에도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다. 이미 수년전 간암 판정을 받고 수차례 대 수술을 받아야했고, 당뇨와 신장염까지 겹쳐 투석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을 산지 꽤나 오래되었다. 그의 별명이 걸어다니는 종합병동이었으니 쉽지 않은 여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육체의 가시가 그의 사역을 막지는 못했다. 목회중에 두란노서원을 열었으며 CGNTV를 개국하여 문서선교는 물론 방송선교에까지 발을 들여놓는다. 특히 하용조 목사는 선교사를 지원하는 일을 위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고, 우상의 땅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 몇 년전부터 '러브소나타'라는 일본선교집회를 계속 이어왔다. 어디 그 뿐인가?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섬기기 위해 강해설교학교와 각종 목회세미나를 열어 목회의 토양을 깊게 해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용조 목사에게는 탁월한 복음의 친화력이 있었던 듯 하다. 복음에 거리가 멀었던 이들일지라도 그를 만난 모두가 그에게 영향을 받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종합병동의 삶을 살면서도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 때문이다. 그는 평생을 따라다녔던 육체의 가시를 통해 "인생은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라는 것을 제대로 배웠다."고 말한다. 내 마음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져야하는 것이 삶이라는 고백이다. 옥한흠 목사가 작년 9월 소천한 후 많은 사람들은 다음 순서가 하용조 목사임을 나름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이요 은혜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내 인생의 최고 절정은 내가 죽는 그 순간이 될 것이다.” 라고 말했던 하용조 목사는 천국백성이 된다는 의미를 제대로 일깨워주고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며 목회와 참 신앙인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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