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그 거룩한 부담 | 운영자 | 2020-05-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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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거룩한 부담 (20.05.17) 목회를 하면 할수록 나 같은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목회자는 누구보다 성실해야 하고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하며, 누구보다 영혼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하고 누구보다 도덕과 윤리적 기준에서 깨끗해야 하며, 누구보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연구해야 하는 사람인데 어느 것 하나 충분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목회자가 그 누구보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하는 설교자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설교속에 살아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역자가 없어 설교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할 때 주일낮예배, 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 7번까지 포함한다면 10번에서 11번이요 그 외에도 여러 심방까지 생각한다면 목회자는 설교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설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목사라고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➊설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➋설교하기를 거룩한 부담으로 여기지만 잘 감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➌설교에 대하여 무척 힘들고 어렵게 느끼며 부담 또한 크게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의 경우에는 세 번째에 해당되니 설교가 목회의 가장 큰 멍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부 못하는 사람이 벼락치기 공부한다고, 설교와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데 부담만 가지고 고민하다가 금요일, 토요일에 와서야 끙끙거리고 준비합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말씀을 풀어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목회의 시작과 함께 감당해야 했던 설교 앞에서 나름 고민하며 정리한 것이 있다면 ‘설교는 누구든 쉽게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 상관없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설교여야 한다는 마음이었고 지금까지 변함없었습니다. 그런까닭에 가급적이면 신학적인 용어들은 배제하고,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고 하며 지금껏 달려왔는데 최근에 와서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것조차도 나의 교만이요 준비되지 못한 설교자의 핑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성도들은 들을 수 있는 수준이 충분하여 지식적 깊이와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음에도 설교자가 더 깊이 있는 말씀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하는 찔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목회자의 설교에 대한 말씀연구와 묵상, 깊이 있는 적용이 이루어질 때,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또한 이해가 쉬운 것은 물론 감동을 넘어 믿음의 도전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또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으로 충만케하여 악한 영과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며 살도록 이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부분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시대 교회와 성도들의 무기력함은 강단의 약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대화 도중 ‘설교하지 말라’는 말에는 신앙의 삶이 없는 목회자의 말씀 선포에 대한 꾸짖음 같아서 더 고민하게 되고 강단의 약화에 책임을 느끼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목회자로 부르셔서 설교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갖게 하시고 이 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오늘도 말씀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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