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어떤 종교인가? | 김경훈 | 2008-12-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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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Islam)이란 어떤 종교인가? 두가지 이유로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첫째, 미전도 종족의 거의 90 % 가 이슬람이다. 인구로 따지면 복음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90 %가 이슬람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전도하기 위해서 알아야 한다. 둘째,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만큼 이슬람을 믿는 정통 무슬림들도 무함마드가 명령한 이슬람의 성전 곧 지하드를 수행하기에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꼭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슬람의 정의(definition)는 무엇일까? 꾸란에서 정의하는 이슬람은 복종(submission)을 의미한다. 그러면 무슬림(Muslim)의 정의는 무엇일까? 알라(Allah)와 무함마드, 그리고 더 나아가 이슬람의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사람이다. 꾸란은 분명히 알라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무슬림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힌다. 이것에 대해 말한 꾸란을 보자 “믿는자들이여 하나님께 복종하고 선지자(무함마드)와 너희가운데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만일 너희가 어떤 일에 분쟁이 있을 경우 하나님과 선지자(무함마드)께 위탁하라 너희가 하나님과 내세를 믿는다면 그 것이 선이요 가장 아름다운 최선이라” (꾸란 4:59)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무함마드에게 복종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무함마드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무슬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무함마드가 무슬림에게 알라를 대언해 명령한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중에 제일 심각하고 제일 무서운 바로 성전이다. 모든 사람이 이슬람을 믿고 무슬림이 되도록 싸우는 것이 바로 성전이다(꾸란 8:39). 또 하나 우리가 필히 알아야 할 것은 이슬람은 기독교처럼 은혜의 종교가 아니고 행위의 종교다. 행위에 근거해 천국에 가는 것을 믿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도 알 수 없다. 죽으면 무덤으로 가 부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알라가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결정하기에 구원의 확신이란 가질 수가 없고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어느 무슬림이 살아서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면 이것은 알라의 영역을 침범하는 신성모독이다. 그런데 꾸란에 확실하게 천국을 보장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지하드(성전)을 하다가 순교하는 것이다. 이것을 잘 설명한 것이 Noble Quran Version 이다. “Let those(believers) who sell the life of this world for the Hereafter fight in the Cause of Allah, and whose fights in the Cause of Allah, and is killed or gets victory, we shall bestow on him a great reward. (꾸란 4:74, The Noble Quran)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에서 성전케하여 내세를 위해 현세의 생명을 바치도록 하라 하나님의 길에서 성전하는 자가 살해를 당 하건 승리를 거두건 하나님은 그 에게 크나큰 보상을 주리라” 성전을 위해 싸우는 자에게 알라가 구원을 허락한 꾸란의 귀절이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성전하다가 죽는자)에게 천국을 약속하였으니 밑으로 강이 흐르는 그곳(Paradise)에서 영생하리라 그것이 바로 위대한 승리라” (꾸란 9:89) “For them(jihadist) Allah has got ready Gardens(Paradise) under which rivers flow, to dwell therein forever. That is supreme success” 지하드에 관해 꾸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고 행위의 종교인 이슬람에서는 이것이 현세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구원의 확신이기에 많은 무슬림들이 꾸란을 믿고 지하드를 하다가 순교를 원하는 것이다. 무슬림의 행위(선행, 악행)를 저울로 달지 않고 지하드를 통해 순교하면 곧 바로 천국에 가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지하드만이 유일하게 확실히 현세에서 천국을 보장하기에 지하드가 근본주의자 무슬림에게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성전을 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구상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알라와 무함마드와 꾸란을 거역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기독교나, 불교나, 힌두교나 기타 종교 또는 무종교를 버리고 무슬림들이 믿는 알라와 무함마드와 꾸란만을 믿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을 죽이라고 알라가 친히 무슬림들에게 명령했기에(꾸란 9:5) 저들의 지하드는 저들만의 문제가 나의 신앙과 그리고 더 나아가 나의 생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대비하고 기도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3-44) - 이슬람이 오고 있다 ― “한국,포교 거점기지로” “찾아온 무슬림들 선교 기회” △ 장훈태 = 최근 한국 교회가 이슬람을 지나치게 적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오는 것은 한국에 대한 호감 때문이다. 이럴 때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테러집단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관점, 즉 예수께서 주신 사랑을 보여주고 그들을 껴안는 게 필요하다. 그들에 대한 혐오감, 우월감을 버리고 그들의 문화를 깊숙이 이해하면서 끌어들이고, 기독교가 가진 근본적 사랑을 느끼게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들은 나름의 문화가 있다. 이를 존중해야 하고 그리스도인들도 코란의 참모습을 배워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들의 형성과 발전을 이해하려는 것 역시 중요하다. △ 김마가 =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인 선교 자원이 전 세계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세계 인류에게 80번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세계에는 아직도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이슬람이 어떤 전략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이슬람의 실제 확산을 의미하지는 않다. 물론 이슬람의 전략적인 특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만 유럽의 이슬람과 한국사회의 이슬람은 다르다. 유럽은 이미 오랫동안 무슬림의 이주가 있었고 세대가 변하면서 이슬람 사회가 형성됐다. 반면에 한국에 있는 무슬림들은 디아스포라 개념이다. 이들 무슬림은 대부분 1세대이고 일시적인 체류자들이다. 또 약자들이다.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유럽의 이슬람이 증가하는 요인 중 개종자들이 많다는 것은 북아프리카의 이민자들이거나 과거 모스크에 나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무슬림들이 힘을 얻으면 이슬람화시킨다는 데 이견이 없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사회의 현상은 마치 무슬림들이 이 사회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 기독교적 관점에서 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슬람의 종합적인 이해가 부족해 이슬람의 세계전략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이슬람에서의 개종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해야 기독교의 선교가 실효를 거둘 수 있나. △ 장훈태 = 그들은 스스로 참된 종교를 믿는다고 말한다. 자기 종교를 우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타종교에서 그걸 무시하면 반감이 일어난다. 반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특히 인도적 차원과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그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수용적 차원에서 교회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게 필요하다. 또 교회가 관련 법규를 개정해서라도 그들이 따로 살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그들의 자녀, 코시안도 교회가 끌어안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을 하나의 인격적 주체로 받아주고 동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포용과 배려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 이현수 = 왜 무하마드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떠올려 본다. 그 역시 아라비아반도에서 하나님을 찾는 한 사람이었는데 왜 그가 예수를 찾지 못할까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갈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본다. 과연 우리가 무슬림에게 다가가는가를 자문할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본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을 만나는 것에 벽을 두고 있다. 수많은 무슬림들 중 80% 이상이 평생에 한번도 예수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고 있다. 미전도 종족 대부분이 그들이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예수에 대한 왜곡적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다가가 사랑의 사도 예수를 그들에게 소개하고 복음의 진수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 유승관 = 그리스도를 만난 무슬림이 거의 없는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개종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슬림들은 진실한 말과 행동이 수반된 그리스도인의 우정에 적극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무슬림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들을 적대세력으로, 영적인 적대세력 등으로 치부하면 다가가기가 어려워진다. 진실한 그리스도 제자의 모습을 인격과 사랑과 진리로 보여줄 때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또 이슬람을 너무 단편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전체를 볼 때 거기에 맞는 전략이 나온다. - 찾아오는 이슬람을 맞는 한국교회에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김성태 = 한국교회의 선교전략 첫째는 개혁지향적인 이슬람의 영향을 받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이슬람이 근본주의적 방향으로 가서 테러리즘의 온상이 되는 게 아니라 온건한 이슬람이 오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이슬람을 경계하되 지나친 두려움과 부정적 생각은 기독교인에겐 금물이다. 성경은 온유와 사랑을 강조한다. 오픈도어스선교회의 경우 이슬람을 'ISLAM(I Sincerely Love All Muslim)'으로 이야기한다. 셋째, 참된 무슬림은 하나님을 경외하려는 진지한 마음의 염원이 있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원본이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복음서를 읽도록 해야 한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사우디 등에서 성경을 읽고 자생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넷째, 이슬람권 선교를 위해서는 믿음과 행위가 일치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금은 총체적, 전인적 복음을 전해야 할 상황이다. △ 유승관 = 교회 지도자들의 패러다임이 전환됐으면 한다. 세계관이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전략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그런 다음 교회가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어떻게 치료하고 도울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내부자적 관점에서 한국 교회가 더 준비해야 한다. △ 김마가 = 이슬람권의 정치 동향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 자료를 모으는 게 필요하다. 대부분 이슬람 자료들은 이슬람 단체들이 낸 자료들이다. 우리가 이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데 이제는 실제 이슬람권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현재 이슬람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슬람 그룹에서 나오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입장을 모을 필요가 있다. 단편적 이슬람 이해는 오해를 초래한다. 이슬람 문화를 제대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교회에서 무슬림을 초청해놓고 돼지고기를 만들어 준다거나 아랍인들에게 발바닥을 보이는 것은 무례한 행위이다. 문화적 민감성을 고려해야 한다. △ 이현수 = 무슬림들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다. 더 많은 기도와 고통의 동반자들이 필요하다. 알자지라 방송이 이라크 미군 포로 학대 장면을 방영하면서 삽입한 배경음악이 뭔지 아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음악이었다. 고통 받는 무슬림들에게 고통의 동반자는 무하마드가 아니라 예수라는 얘기를 방증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가 이 일을 담당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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